PAINT IT ROCK 1. 브리티시 인베이전 롤링 스톤스, 애니멀스, 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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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PAINT IT ROCK 1. 브리티시 인베이전 롤링 스톤스, 애니멀스, 더 후

by 골든피그0226 2020. 8. 6.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는 1962년 보컬 믹 재거, 기타 키스 리처드, 기타 브라이언 존스, 베이스 빌 와이먼, 드럼 찰리 와츠의 멤버로 결성되었습니다. 

롤링 스톤스의 매니저 앤드류 루그 올드햄의 전략으로 비틀즈와 상반되는 터프한 이미지를 부각하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데뷔 싱글도 척 베리의 <Come on>으로 거친 흑인 스타일로 노래했습니다. 영국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미국으로 진출했는데 , 비틀즈처럼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영국에서 건너온 애니멀스(The Animals)는 데뷔 앨범의 수록곡 해 뜨는 집(House of the Rising Sun)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1위를 하며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습니다. 

1965년 키스 리처드와 믹 재거가 함께 만든 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1에 오르게 됩니다. 이 곡은 미국 케이블 음악채널에서 현역 음악분야 종사자 700명에게 조사한 20세기 최고의 록 음악 1위에 꼽히기도 합니다. 이후 발매된 <Paint it Black>, <Stupid Girl>, <Under My Thumb> 등의 곡들도 히트를 하게 됨과 동시에 록의 명곡으로 꼽히게 됩니다. 

롤링 스톤스는 <Satisfaction>부터 펑크적 성향이 강화된 음색으로 퇴폐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며 악동의 모습으로 각인됩니다. 당시 뛰어난 음악성으로 인정받기도 했지만 온갖 추태와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1969년 7월 3일에는 롤링 스톤스의 창단멤버 브라이언 존스는 약물 과용으로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그는 이미 심각한 약물 중독으로 팀에서 방출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또 같은 해 12월 6일 캘리포니아주 앨터몬트 고속도로에서 무료 콘서트를 개최했으나 너무 많은 관중이 몰려 아수라장이 되면서 경호원이 흑인 청년을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자 비난에 휩싸이며, 미국 공연 취소와 추방이 되는 등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애니멀스(Animals)는 보컬 에릭 버든, 키보드 앨런 프라이스, 베이스 채스 챈들러, 드럼 존 스틸, 기타 힐튼 발렌타인으로 5인조 R&B 밴드였습니다. 이들은 롤링 스톤스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하였으나 초기에는 롤링 스톤스를 압도하는 성공을 거둡니다. 데뷔 앨범의 성공과 1965년 5월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Animal Track>에서도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We've gotta get out of this place>가 연이어 히트하며 비틀즈 다음으로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잦은 멤버 교체와 불화로 1969년 해체하게 됩니다. 그들은 1964년부터 1968년까지로 짧은 기간 동안 활동하다 해체를 맞게 됩니다.

 

 더 후(The Who)도 또하나의 영국 록 그룹으로 1964년 기타 피트 타운센드, 보컬 로저 달트리, 베이스 존 엔트위슬, 드럼 키스 문 의 네 사람으로 결성됩니다.

더 후는 난폭함과 모드(Mod)라는 두가지로 나누어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무대에서 기타를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가 밴드의 트레이드마크로 화려하고 과격한 쇼맨십의 밴드였습니다. 

모드(Mod)는 모더니스트(Modernist)의 약자로 60년대 중반 영국에서는 바가지머리, 작고 아담한 스쿠터, 슈트로 표현되는 패션, 문화적 사조입니다.

1965년 12월 <My Generation>을 발표한 더 후는 비틀즈나 롤링 스톤스에 비해서는 미국에서의 차트는 크게 성공적이지는 못했으나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한 공연 뒤로는 세계적인 록 그룹으로 자리 잡습니다. 더 후의 <My Generation>은 기존에 인기있던 다른 곡들과는 다르게 거칠고 공격적인 가사의 곡이었습니다. 

더 후는 파괴적인 무대 퍼포먼스 뿐 아니라 연주도 파워풀했는데, 피트 타운센드가 사용한 디스토션(distortion) 사운드는 이후 헤비메탈 사운드가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더 후가 1969년 발표한 앨범 <Tommy>는 위대한 록 뮤지컬로 평가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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